AI시대 2022년생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AI가 답을 다 주는 시대, 익혀야 할 3가지

주입식 교육이 앞으로 의미가 줄어든다는 건 다들 안다.
정해진 지식을 많이 넣고, 정해진 답을 빨리 찾는 훈련.
그건 AI가 이미 너무 잘한다.

문제는 지식이 아니다.
문제는 부모 마음이다.

알면서도 어렵다.
특히 “내 아이”에게 처음 적용하려는 순간부터 갑자기 손이 굳는다.
남들은 말로는 다 쉽다.
막상 내 아이가 눈앞에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냐면 아무리 세상이 변할걸 알아도 내 애를 탐험가로 키우는 모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 집은 더 애매하다.
우리 애는 2022년생이다.
공부를 시킬 나이도, 숙제를 봐주는 단계도 아니다.
그런데도 벌써 고민이 시작된다.

과연 얘가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애 등에다가 2022라고 쓴거는 마음에 안드는데 실루엣이 왠지 우리 애같아서 냅둠

10년 뒤는 “업데이트”가 아니라 “룰이 바뀐 게임”일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대체로 이렇게 살아왔다.

  • 외워서 쌓고
  • 반복해서 익히고
  • 시험에서 점수로 증명하고
  • 그 점수로 다음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앞으로 10~20년은 속도가 다르다.
변화가 “조금씩”이 아니라 “통째로” 올 가능성이 크다.

AI가 이미 보여줬다.
검색보다 빠르게 답을 주고, 정리까지 해준다.
초안도 써준다.
코드도 짠다.

그러면 “많이 아는 사람”의 프리미엄은 줄어든다.
대신 다른 게 비싸진다.
무엇을 물을지 아는 사람. 무엇을 만들지 아는 사람.

피라미드는 더 뾰족해질 수 있다

요즘 많이들 말하는 구조가 있다.

  • AI를 만드는 사람이 먹이사슬의 최상단
  • AI를 활용해서 가치와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그 아래
  •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
  • 남의 생산수단(회사, 플랫폼, 자본)에 소속된 사람

이 구조에서 아래쪽이 불안해지는 건 자연스럽다.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인간보다 AI가 더 싸고 빠르다.
더 일정하다.
더 잘 까먹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 노동이 없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아이를 어떤 쪽으로 키워야 하냐.
고용되는 인간이냐, 만들어내는 인간이냐.

정답은 뻔해 보인다.
그런데 방법은 뻔하지 않다.

지식은 외주가 된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게 바뀐다

단적으로 말하면, 지식을 주입하는 건 예전만큼 의미가 없다.
지식은 AI에게 던지면 얼마든지 나온다.

여기서 흔한 착각이 나온다.
“그럼 공부 안 해도 되겠네?”
이건 위험한 결론이다.

지식이 흔해지면, 희귀해지는 건 따로 있다.

  • 어떤 질문을 던질 줄 아는가
  •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은가
  • 그걸 끝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가

AI를 활용한다는 건 “도구 사용법”이 아니라 의도에 더 가깝다.
도구는 금방 배운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은 도구를 쥐어줘도 구경만 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소비는 너무 쉽다.
남이 만든 콘텐츠와 생산물을 받아먹는 건 자동이다.

미래에는 그 유혹이 더 강해질 것이다.
극소수가 만든 걸 대다수가 소비만 하는 구조.
겉으로는 편한데, 속은 텅 비어 있을 수 있다.
나는 그 모습이 “정신적인 노예”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표현은 세지만, 방향성은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래서 지금 현 정부 및 전세계에서 시행하는 기본소득이 트렌드에 맞는
무서운 행위라고 본다. 사람들은 생산력에서 기계에게 밀리고, 기계가 만들어낸 밀키트나 먹고 사는거고
사람이 만든 요리는 엄청난 부자들만 먹을수있는 배급견의 삶이 일반화된 시대 말이다.

그래서 핵심은 ‘창의성’보다 ‘능동성’이다

사람들은 창의성을 말한다.
멋진 단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게 있다고 본다.

능동성.

  • 스스로 궁금해하는 힘
  • 스스로 움직이는 힘
  • 남이 시킨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질문을 만드는 힘

아마 나처럼 아무것도 하고싶은 것은 없지만, 그렇지만 시키는건 기깔나게 잘했던 사람은

앞으로의 시대에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그보다는 “내가 뭔가를 하고싶은게 있는” 사람이 살아남을 것이다.

하고싶은게 없는 사람은 AI가 주어져도 아무것도 할게없고,
하고싶은것이 있는 사람은 무한하게 모든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될 테니까.

창의성은 능동성의 다음 단계인 경우가 많다.
능동성이 없으면 창의성은 “그럴듯한 따라하기”로 끝나기 쉽다.

물론 능동성은 기질이 크다.
어떤 아이는 타고나길 들끓고, 어떤 아이는 조용하다.
하지만 기질이 전부는 아니다.
특히 2022년생이면 더 그렇다.
환경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성격을 만든다.

능동성을 죽이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내 애니까 내 유전자를 받았으면 능동성과 창의성이 적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얼마안되는 능동성을 죽이지않고 키워줘야한다.

그러기위해서 해야할 일.


나는 작금의 주입식 교육이 능동성의 천적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시키는 걸 하고, 남이 정한 문제를 풀고, 남이 정한 답을 찾는 훈련.
이건 능동성을 키우기보다 말리는 쪽으로 가기 쉽다.

그런데 우리 애는 아직 학교도 안 간다.
그럼 우리 집에서 능동성을 말리는 건 뭐냐?

  • 아이가 심심해할 틈을 못 주는 것
  • 질문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정답을 말해버리는 것
  • “빨리”로 모든 과정을 생략해버리는 것
  • 계속 영상만 틀어주는 것

이건 다 같은 방향이다.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수동성은 한 번 편해지면 끈적하게 붙는다.

“그래도 체화된 지식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반론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

이 반론도 맞다.

기성세대는 이미 커리어가 있고, 몸에 익힌 지식이 있다.
그래서 AI를 붙이면 생산성이 크게 튄다.
반대로 아이들은 체화가 없다.

그리고 체화는 원래 고통이 들어간다.
시간이 들어간다.
진득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대는 또 어떻나.
유튜브도 쇼츠로 본다.
이 환경에서 “한 자리에 오래 앉는 힘” 자체가 희귀해진다.

그래서 더 갈린다.
이 환경에서도 진득하게 파고드는 아이는 나온다.
그리고 그런 성질(능동성 + 끈기)은 희귀해질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성공의 조건이 “지능”보다 “지속력” 쪽으로 더 이동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2022년생에게 이걸 남기고 싶다

내가 결론처럼 붙잡고 싶은 건 세 가지다.

1) 능동성: “네가 고르는 경험”을 자주 남겨두기

이 나이에 거창한 꿈이 있을 리 없다.
대신 선택은 가능하다.
무슨 책 읽을지, 무슨 놀이 할지, 어떤 색을 쓸지.
작아도 된다.
핵심은 “내가 정한다”는 감각이다.

2) 창의성: 결과보다 시도를 칭찬하기

완성품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해보려 했다”가 더 중요하다.
AI 시대에는 더 그렇다.
정답처럼 보이는 결과물은 AI가 뽑아준다.
사람은 그걸 자기 의도로 고치고, 다시 만들고,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3) 끈기 + 도파민 관리: 쇼츠에 녹는 뇌를 막기

나는 독서를 꼭 시키고 싶다.
문자를 천천히 따라가며 생각을 유지하는 경험.
그게 집중력의 근력이다.

영상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짧은 자극만 계속”은 확실히 위험하다.
긴 호흡을 버티는 능력이 약해진다.
그리고 긴 호흡이 필요한 순간은 결국 온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식을 많이 넣는 시대는 약해지고,
능동성·창의성·끈기가 더 비싸지는 시대가 온다.
그리고 2022년생에게 그걸 남기는 출발점은
거창한 조기교육이 아니라, 일상에서 수동성이 굳는 길을 피하는 것부터일 수 있다.

나도 정답은 없다.
다만 방향은 이쪽이라고 본다.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애는 어떤 세상을 살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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