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도 놀게 되는 시대가 왔다.
이 문장을 쓰는 내가 제일 낯설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실무수습 기관을 못 찾아 ‘미지정’으로 남는 사람이 600명가량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금융위, ‘수습기관 못찾은 회계사 증가’에 개선안 마련 착수)
이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숫자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이 바뀌는 문제이다.
이건 “회계사 위기”가 아니라 “주니어 위기”이고, AI시대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자꾸 “회계 업황이 안 좋아서 그렇다”로 정리하려고 하지만
사람들도 아닌거 다 안다.
사람들 다 안다.
AI가 발달하면서 주니어가 실력을 쌓을 자리가 줄어들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주니어는 원래 뭘 하면서 크나?
자료 정리하면서 맥락을 배우고,
초안 만들면서 구조를 배우고,
검증하면서 기준을 배운다.
재미없고 반복적이다.
맞다.
그런데 그 구간이 바로 성장 구간이다.
그런데 지금 그 구간을 AI가 먼저 먹는다.
예전에 대기업에서 무경력 대학생은 안뽑고 경력있는 사람만 뽑는다는데,
모두가 그러니까 도대체 어디가서 경력을 쌓아야하냐는이야기가 있었다.
지금 이 사태는 그 위기가 심화된 버전이다.
AI는 먼저 ‘신입의 발판’을 먹는다
AI가 직업을 통째로 없애는지 아닌지는 논쟁이 많다.
실제로 “아직은 고용에 큰 충격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겠지. 그럴수있겠지.
근데 바뀌는건 순식간이다. 그리고 지금 기반이 무너지고있다.
일단은 가장 쉬운 직무부터 자동화를 하겠지.
그렇게 쉬운 직무가 대체되면 조직은 이렇게 생각한다.
- “이 정도면 굳이 신입을 많이 뽑아야 하나?”
- “가르치는 비용을 왜 지금 내야 하지?”
그리고 그 생각은 숫자로 나타난다.
빅4 회계법인 신입 채용이 작년 800명대에서 700명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이유로 AI 중심 디지털 전환이 거론됐다.
회계법인뿐만 아니다. 내 주변의 많은 시니어들이
주니어를 가르쳐서 쓸만하게 만드는게 생각보다 어렵다고하면서
정말 바쁠때는 가르치기보다 그냥내가하고만다 라고 하고있는데,
그 내가 하고 만다 라고할때 AI를 달아주면?
AI는 시니어에게 ‘날개’가 된다
AI의 발전은 시니어에게 오히려 유리하다.
정말 웃기는 패러독스다.
AI라는 신문물은 되려 젊은이들이 익숙하게 쓰고
나이든 시니어들은 쓸줄몰라서 도태될거같은데,
진짜 역설적이다.
AI는, 새롭게 뭘 해야할지 알려주는게 아니라 뭔가를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아는 사람이 그 방향으로 쉽게 가게 도와준다.
주니어는 방향을 모르고 잘 뛸 힘이 있고 시니어는 방향은 알되 잘 뛸 힘이 없다
(체력도 달리고 노안이와서 눈도 잘 안보이고…)
시니어는 이미 숙련이 있다.
- 어디가 위험한지 알고
- 뭘 확인해야 하는지 알고
- 어떤 결과가 말이 되는지 안다
AI가 도와주는 건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정리.
리서치.
초안.
반복 작업.
즉, 시니어의 시간을 갉아먹던 구간을 줄여준다.
그러면 시니어는 판단에 더 시간을 쓴다.
그 사람은 더 빨라진다.
그리고 한 번 빨라진 사람은, 계속 빨라진다.

주니어는 숙련을 ‘배울 기회’부터 잃는다
반대로 주니어는?
주니어는 원래 그 반복 구간에서
실수를 하고, 혼나고, 다시 하고, 고치면서
몸에 박힌다.
그게 숙련이다.
근데 그 구간을 AI가 가져가면,
주니어는 “숙련을 얻을 기회” 자체가 얇아진다.
여기서 진짜 질문이 나온다.
주니어는 뭘 하면서 시니어가 되지?
이것이 바로 다른 형태의 사다리 걷어차기인가?
내가 지금 하는 것 자체가 ‘시니어 메타’다
그리고 더 찝찝한 건 이거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가 이 구조를 증명한다.
나는 워드프레스로 이사온지 얼마 안됐지만
네이버블로그에서 이웃 1만2천명까지 불렸던 블로거다.
그 블로그에 예전에 써둔 글이 있다.
세어보니 2034개다.
내가 이 글을 가지고 뭘 했을까?
글 수십개를 AI한테 보여준다.
그리고 내 문체를 익히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자판을 두들겨서 글을쓰지않고,
휴대폰의 마이크를 켜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생각을 쭉 입으로 주절주절 떠든다.
물론 말로써도 웬만한 글도 되고, 나의 친애하는 이웃 블로거였던 노모벳 형은
이미 글을 운전하면서 그렇게 쓰는거같긴 했다만,
아무리그래도 내글은 띄어쓰기도 많고 문장도 짧아서 말로하는것과 글로하는건 맛이다르다.

자. 내 생각을 쭉 부른다. 써보니까 글로 열다섯줄정도 되더라 줄줄줄.
그리고 내 문체를 학습시킨 GPT에게 명령을 내린다.
내 문체를 학습해. 그리고 방금 내가 한 이야기를 내 문체를 적용해서
블로그용 글로 써줘.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이 글이다. (물론 손으로 수정을 한 20분은 해야되더라. 더 맛깔나려면)
내가 이야기하는건 그거다.
뭔가 떠들 건덕지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나. 시니어.
그리고 내 문체를 학습시킬 수 있는 글, 블로그 글 2000개를 가진 나.
내 블로그 글은 나의 재료. 내 데이터. 이게 있는 시니어.
주니어는 이걸 하기 어렵다.
주니어는 아직 쌓아둔 게 적고,
판단 기준도 덜 생겼고, 글쓸아이디어도 적다.
무엇보다 블로그를 그렇게 써본적이없어서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익숙하지않다.
초짜블로거로 꾸준히 써가면서 글쓰기근육이 붙어야되는데
요새는 뭐 AI가 글을 폭탄처럼 투하하고있으니 그런 블로거가 설 자리가 있나?
즉 “쌓는 과정”을 하던 일들이 AI로 먼저 얇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AI를 잘 쓰면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AI는 가진 사람에게 더 잘 붙는다.
도구가 공평해 보일수록, 결과는 불공평해질 수 있다.
그래서 회계사 뉴스가 더 불편하다
회계사 미지정 문제를 보면서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는다.
수습기관 늘려야 한다.
선발 인원 조정해야 한다.
제도 손봐야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한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초급이 사라지는 사회.”
그 사회는 어떻게 되나?
- 위는 더 빠르게 굴러가고
- 아래는 올라갈 계단이 줄어든다
성장 사다리가 희귀해진다.
그럼 결국 남는 건 두 부류다.
- 이미 올라가 있는 사람
- 애초에 스스로 사다리를 만들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은 아주 난사람이다)
중간이 얇아진다.
요새 K 자 양극화가 트렌드라던데 사회가 이렇게되면 정말 활동성이 떨어지고
발전가능성이 떨어진다.
극도의 가진자, 부자, 지식인층 상류층이 있고 대다수 기본소득으로 먹고사는 배급자들이 있다.
그럼 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하냐
여기서 나는 다시 부모로 돌아온다.
우리 애는 2022년생이다.
지금은 숙제도 없고, 성적표도 없고, 입시도 없다.
근데 오히려 그래서 더 묻게 된다.
이 아이는 어떤 “경로”로 숙련을 만들 수 있을까?
회사에 들어가서 배우는 길이 얇아지면,
학교에서 정답 푸는 길이 약해지면,
그럼 어디서 크지?
내 결론은 이상할 정도로 원시적이다.
아이에게 남겨야 할 건 “지식”보다
축적하는 습관일 수 있다.
- 만든 흔적을 남기는 습관
- 기록하는 습관
- 시간을 들여 붙잡는 습관
- 그리고 그걸 다시 꺼내 쓰는 습관
AI는 “재료”를 만들어주기보다
재료를 가공해준다.
그러면 경쟁력은 이렇게 바뀐다.
AI를 잘 쓰는 기술보다
AI에게 줄 ‘자기 재료’를 꾸준히 쌓는 힘.
이게 주니어에게 가장 가혹한 이유도 여기 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며 듣는 라디오에서 그랬다.
그렇기때문에 경험을 많이 해야하고, 자신의 취미를 갈고닦아, 생각을 갈고닦아 고도화해야한다고.
AI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할때,
좀 더 파랗게 해줘 라고 할 줄 아는 주니어와
고흐의 별이빛나는밤에 처럼 해줘 라고 말할줄아는 주니어는
AI로 만들어낼 줄 아는것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